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작가, 2025 리뷰)

by kkeudok 2025. 10. 10.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리뷰

최은영 작가의 신작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인간이 지닌 내면의 온기와 회복의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이 글에서는 작품의 핵심 주제, 문체적 아름다움, 그리고 오늘의 독자에게 던지는 인사이트를 존경체로 자세히 다루어 보겠습니다. 감정의 섬세한 결을 놓치지 않고, 문학이 줄 수 있는 위로와 성찰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의 상처와 관계의 결, 그 섬세한 감정의 기록

최은영 작가의 소설에는 늘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에는 늘 어떤 불완전한 사랑과 미묘한 거리감이 존재합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역시 이러한 관계의 결을 세밀하게 그려냅니다. 이 책의 인물들은 화려하지 않고, 오히려 작고 평범한 인생의 한 장면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하는 감정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습니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시선, 말하지 못한 침묵 속에 감정의 층위를 쌓아 올립니다. 어떤 인물은 사랑을 놓쳤고, 또 다른 인물은 미안함을 품은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모두에게는 공통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여전히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것이 작가가 말하는 ‘희미한 빛’입니다. 완벽하지 않은 이해와 불완전한 관계 속에서도 여전히 이어지려는 마음의 끈이 존재합니다.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이 인물들의 조용한 고백을 통해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게 만듭니다. 우리는 누구나 관계 속에서 다치고, 때로는 상처를 남깁니다. 하지만 그 경험이 바로 인간을 성장시키는 힘이 된다는 것을, 최은영은 아주 담담한 문장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감정의 치유 과정”과도 같습니다.

문체와 서사의 미학, ‘조용한 감정’의 힘

최은영 문학의 가장 큰 미덕은 ‘조용함’입니다. 그녀의 문장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감정이 배어 있는 공기와 시선, 말하지 못한 문장 끝의 여운으로 표현합니다. 이 절제된 문체는 독자에게 스스로 감정을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며, 읽는 사람의 내면에서 천천히 울림을 만들어 냅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서사는 대단히 섬세하고 정직합니다. 인물의 행동 하나, 대사 한 줄에도 감정의 결이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타인의 고통 앞에서 침묵할 때, 그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깊은 공감의 방식으로 그려집니다. 작가는 독자가 그 침묵의 의미를 스스로 느끼게 합니다.

또한 이 책에는 ‘빛’이라는 상징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빛은 찬란하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 간신히 주변을 비추는 정도의 미약한 빛입니다. 그것은 완벽한 구원이나 해답이 아니라, “아직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의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최은영의 글은 독자에게 ‘완벽한 해소’보다 ‘지속되는 여운’을 남기며, 문학이 현실의 고통을 단번에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옆에 조용히 머무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문장은 음악처럼 읽힙니다. 리듬이 있고, 숨결이 있습니다. 문학적 장치가 과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문체 자체가 감정의 진폭을 만듭니다. 바로 이 점이 최은영 문학의 매력이자,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가 가진 특별한 힘입니다.

현대 독자에게 주는 통찰 – ‘희미함’의 가치

오늘날 우리는 강렬한 감정, 빠른 변화, 즉각적인 반응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SNS에서는 ‘확실한 감정’과 ‘뚜렷한 결론’이 환영받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모호합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인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이 책은 “희미함이 곧 무의미함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그 희미함 속에서 인간의 진심이 드러납니다. 작가는 우리가 완전한 빛을 쫓는 대신, 불완전한 마음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지길 권합니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의 고통 옆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이 메시지는 단순히 문학적 감상이 아니라, 삶의 태도로 확장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사랑이 부족해도 여전히 의미 있다는 것. 이런 사유는 지친 현대인에게 깊은 위로로 다가옵니다. 작가의 문장은 독자에게 ‘감정의 쉼표’를 선물합니다.

또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여성 작가로서의 시선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여성 인물들은 사회적 압박이나 관계의 부조리 속에서도 끝내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갑니다. 그들의 내면은 고요하지만 단단하며, 감정의 표현이 절제되어 있음에도 삶을 향한 의지는 분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최은영 문학이 지닌 윤리적 온도이자, 동시대 여성 서사의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단순히 한 권의 소설집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연약함을 존중하는 하나의 세계관입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상처’ 그 자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상처는 결코 삶의 결점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따뜻해집니다. 작가가 말하는 “희미한 빛”은 결국 우리 모두가 지닌 작은 선의의 마음이 아닐까요.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고, 완벽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도 사랑이 가능하다는 믿음. 그것이 이 작품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문학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렇게 작고 미세한 감정의 진실을 포착할 때 가장 강력해집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바로 그런 문학의 본질을 잊지 않게 하는 작품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이 책을 통해 스스로의 삶 속에서 아주 작은 ‘빛’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